오늘은 민주화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날이로군요. 그냥 넘어가고 싶었는데....
사실 저희 때는 민주화라는 것이 불가능한 줄 알았어요. 4.19 이후에 학생운동이 계속 승계되어 왔지만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정보부의 손아래 놀아나는 정도였지요. 대학교에까지 교련수업을 받고 그도 모자라 문무대라는 병영체험을 할 정도 였으니 제도권 교육에서도 숨쉴 틈이 없었어요. 대학 1학년 내내 대모를 했지만 학교 정문을 벗어나 본 적은 한번 밖에 없었어요. 그나마도 고개를 넘지 못하고 모두 쫓겨갔지만요. 지금은 녹두거리도 활성화 되어있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문에서 녹두거리까지 가정집이 몇 집 있을 정도였으니까요.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것에 그 때만큼 회의적인 때가 없었어요.
그러던 것이 2학년 말에 10.26으로 격변하게 되어... 1980년에 대대적으로 실패를 맛보게 되었지요. 오히려 그런 봄을 맞은 기억이 없었으면 더 좋았을 지도 모르죠.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가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충격이 두배가 되었을 지도 몰라요. Djuna님도 나선형의 역사발전을 얘기했지만 밝은 곳으로 나갔다가 다시 뺑글 돌아서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면.... 더 갑갑해지죠. 지금 대부분의 D모게시판에서 얘기되는 후퇴하는 느낌 그 이상이었지요.
그러나 그게 결국 22년 전의 오늘을 가져오게 된 원동력이라 생각해요. 그 당시의 넥타이부대란 결국 저희 세대와 그 이전세대가 맡은 부분이었을 것이에요. 물론 주역은 386이지만요. 386세대는 자신의 이상에 따라 성공을 하고, 그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어요. 역사가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하면 아마 새로운 성공을 얻을 수 있겠죠. 희망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.
* 저희가 학생이었을 때 얼마나 회의적이었나 하면..... 데모는 한번도 하지 않은 친구가 암울한 현실을 버티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죠. 이는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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